일기_황정은 에세이|그가 어떤 세상에서 사는지 궁금했다.
이 책은 내가 생각한 에세이와는 달랐다.
내가 짐작하고 기대했던 에세이의 내용과는 전혀 달랐다.
나는 에세이를 뭐라고 생각했을까? 머리를 뎅~하고 맞은 기분이다. 에세이의 뜻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봤다.
에세이
1. [문학]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 보통 경수필과 중수필로 나뉘는데, 작가의 개성이나 인간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유머, 위트, 기지가 들어 있다.
그제야 '아, 이 책은 에세이가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가 황정은 작가님의 에세이를 읽게 된 이유는 작가님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어마어마한 소설이 나왔을까?' 소설 파씨의 입문을 읽고 든 생각이었다.
내가 읽었던 에세이들은 대체로 먹고 마시고 사람들을 만나고 생활하는, 일부는 나도 경험해 본 평범한 일상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면을 보면 공감하기도 하고 혼자 내적 친밀감을 쌓기도 하면서 읽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일기'도 내 기준에서 그런 보통의 삶을 생각했었다.
보통.
보통의 삶.
이 말은 아예 쓰지 말거나 쓸 수 있을 때 써야겠다.
첫 번째 차례 '일기'에는 코로나가 발병하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확진자들이 연이어 쏟아져 나오던 때의 겪은 한 사건이 담겨있다.
🔖일기(11p)
대구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난 시기에 내가 사는 주택 앞 주차장에서 사람이 쓰러졌다. 저물녘에 책을 읽다가 먼 데서 다가오는 사이렌 소리를 들었다. 가까워지는 듯했다가 금방 멀어져, 구급차가 지나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아래층 이웃이 전체 세대에 사진 한 장과 메시지를 보내왔다.
방호복을 입은 구급대원의 뒷모습과 이제 막 구급차에 실린 사람의 발이 찍힌 사진이었다. 양말을 신은 두 발은 벌어져 있었다. 그 사진을 찍은 내 이웃은 구급차가 당도했을 때 마침 주차장에 있었거나 사이렌 소리를 듣고 일부러 나가본 모양이었다.
그는 자기가 보고 있는 것을 급히 사진으로 담은 뒤 확대하고 잘라내 공동주택 연락망에 올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이 사진 올린 게 저희 옆 동 앞에서 코로나로 의심되는 한분이 갑자기 쓰러져 맥박도 없고 의식불명으로 119에 실려 갔습니다 동 여러분들 각별히 조심하십시오 구급대원은 개인정보라 말해줄 수 없다고 하는데 방역복 입고 하는 거 봐서 확실한 것 같아요 당분간 창문들 닫고 조심하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이 메시지를 받은 뒤로 발 생각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피구조자의 신발이 구급차에 같이 실렸는지 주차장 바닥에 남았는지 누가 챙겼는지, 아무튼 신발의 행방이라거나 공동주택 연락망에서 기척 없이 사라지는 방법 등등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그 발을 자꾸 생각하고 있다. 남의 발을. 몰라서인 것 같다. 내가 가장 모르는 것이 그 발이니까.
🔖일기(16p)
동생과 동거인과 나는 사람들이 이 전염병을 동일하게 겪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바이러스엔 "국경이 없지만, 우편번호가 건강상태를 결정한다. 우리는 그 말을 얼른 알아듣는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이동이 자유롭지만 물리적으로든 심정적으로든 많은 사람들이 자기 집에 갇혔고 거긴 각자에게 상쾌하거나 편안하거나 안전하지 않은 공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가족 구성원이 함께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정폭력이 늘어났으며 그것이 세계적 상황이라는 소식을 뉴스로 들었다.
분명 모든 사람들이 겪었고 나도 겪은 코로나 시대의 일상인데 왜 이상한 나라의 이야기 같을까?
이유는 아마 나와 작가님의 시선과 관심과 생각의 차이 때문인 것 같다.
만약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구급차에 실려간 사람을 보고 불안해서 내 주변을 경계했을 거다. 그리고 단체 메시지를 받고 나서는 가족들에게 감염에 주의를 주고 방역에 더 신경을 썼을 테지. 나와 내 가족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생각했을 거고 주변에 최대한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작가님의 시선은 신발이 벗겨진 발에 가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은 신발의 행방에 대해 궁금해했다. 공동의 안전을 걱정하는 마음이었겠지만 쓰러진 사람의 사진을 찍어 확대하고 잘라 이웃들에게 퍼트린 메시지를 불편해했다.
나의 일상과 작가님의 일상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나의 일상에서 나와 그의 일상으로 넘어가 본 세상이 낯설었지만 나와 같은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어떻게 대해야 할까? 그러고 보니 첫인사는 파씨의 입문에서 이미 나눈 것 같기도 하다. 두 번째, 세 번째 자주 만나하면서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길 바라본다.
파씨의 입문_황정은 소설집|지독한 외로움과 죽음 그리고 지옥 같은 삶에서 나는 어떤 걸 느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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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 그림자_황정은 장편소설|나는 당신의 마음이 불편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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