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새벽 세시_오지은 산문집|다시 꺼내 보아도 아프지 않은 추억이 되었다.
'익숙한 새벽 세시'를 처음 읽었던 때가 아마 3~4년 전이었을 거다.
그때 당시 나는 심적으로 아주 힘들었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속에서 뭔가 울컥울컥 올라왔고 사람이 많은 곳은 가기 싫은 정도가 아니라 두려울 정도로 무서웠다.
이대로 있다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짐을 싸서 혼자 제주도로 내려갔다.
2박 3일 여행에서 내 짐은 단출했다. 백 팩 하나에 여분 티셔츠 한 벌, 갈아입을 속옷, 양말, 책 2권이 다였다.
어디를 돌아다닐 것이 아니기에 항상 가던 바닷가 앞 게스트 하우스에 숙박 예약을 하고 자고, 먹고, 책 읽고, 바다와 석양을 볼 생각이었다. 그때 가져간 책 2권이 '익숙한 새벽 세시'와 '아몬드'이다.
힘들었던 시기 큰 위로가 되어서일까. 책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제주의 풍경과 함께 마음 한편이 아련해진다.
위로받았던 기억이 추억이 되다.
이 책을 선택한 건 표지에 적힌 이 글귀 때문이었다.
'한 줌도 되지 않아 꺼낼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작고 하찮은 마음'
저 글귀가 적힌 곳은 책 표지가 아니라 표지를 감싸고 있는 띠지이다. 띠지는 책을 읽다 보면 잘 벗겨져 떼버리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 띠지는 벗길 수가 없었다. 저 글귀가 계속 마음에 맴돌아서. 그리고 하찮은 내 마음을 잊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아서.
'익숙한 새벽 세시'는 나에게 큰 위로가 된 책이기도 하지만, 힘들었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책장 어딘가에 꽂아놓고 눈과 손이 잘 안 갔었다. 마치 그 시절을 외면하고 싶은 사람처럼.
그런데 시간이 약인 걸까. 몇 년 흐르다 보니 예전에 읽던 추억의 에세이들이 다시 생각이 났다.
홍준형 산문집 달과 같은 사람을 찾습니다. 를 시작으로 익숙한 새벽 세시까지 왔다.
지금 내가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예전과 같은 느낌이 들까? 아니면 이제 별 감흥이 없을까? 기대 반 걱정 반. 책을 들고 카페에 간다.
익숙한 새벽 세시는 총 4장으로 되어있는데 1장 어른 적응기가 그때도 지금도 제일 좋았다.
1장 어른 적응기는 오지은 작가가 자신만의 시간을 갖자고. 결정하고 혼자 떠난 교토 여행에서의 느낀 점을 담고 있다.
나는 시간을 갖기로 결심했다. 사치스러운 결정이지만 절박한 마음에서였다.
지금 이 생각, 이 상황을 그냥 흘려버리면, 많은 것을 포기한 어른이 되어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방향 없이 그저 어슬렁거리고, 변명만 가득한 사람이 되어버릴까 봐 무서웠다.
짐을 싸서 늦겨울 교토로 떠났다. 조용하고 쓸쓸한 곳에 가고 싶었다. 옛것이 보고 싶었다. 싸락눈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혼하고 한 달이 지난 때였다.
-16p '장승곡' 중
오지은 작가님의 교토 여행기는 나의 제주 여행기를 떠올리게 했다.
제주에서의 첫 끼, 여행지에서 나의 루틴, 낯섦과 설렘, 나의 욕망에 대해. 몇 년 전 일인데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아니 이렇게 까지 기억이 나고 그때의 감정이 돼 살아난다고?'
심지어 그때의 힘들었고 상처받았던 마음은 추억으로 덮어져 몽글몽글하고 어느 때는 피식 웃어버리는 잔잔한 기억이 되었다.
"교토에서의 첫 끼니가 타코야끼여서 좋았다."를 읽고 나의 제주에서의 첫끼는 뭐였을까?를 떠올려봤다.
여행에서 첫끼는 기대 가득하면서도 평범하고 간단한 한 끼를 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여행지에서의 첫 식사라 나름 의미 있고 '좋았다'라고 여기는 것 같다.
나의 제주에서의 첫끼는 어땠을까? 정말 배고팠다면 공항에서 식사. 숙소 근처까지 왔다면 무조건 전복돌솥밥.
"난 갑자기 수첩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운 생각을 수첩에 적으면 머릿속이 정리될 것 같았다. 완벽한 수첩을 사야지. 여행지에서의 내 이상한 버릇이다.
그것을 갖추면 인생의 톱니바퀴가 잘 맞물려 돌아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럴 리가 없는데 말이다."
여행지에서는 숙소 밖에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진다. 그래서 숙소에서 한 걸음 떼는데 나름의 계획과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나는 의식적으로 근처에 소품샵을 찾아본다. 위치를 파악하고 곧장 거기로 가서 엽서와 작은 노트, 볼펜을 사가지고 온다.
그리고 그걸 들고 괜찮은(역시 미리 찾아본) 카페를 간다. 커피 한잔 시키고 자리에 앉아서 그날의 분위기, 기분, 생각, 계획 등을 두서없이 적어본다.
그러고 나면 마치 여행을 온 목적을 다 이룬 것 같은 가벼운 마음이 든다. 그다음부터는 정말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여행을 한다.
필사하기 좋은 에세이: 소장 안 할 이유가 없다
스님과의 차담
스님, 뇌와 두개골 뼈 사이에 뭔가 한 층 덮여 있는 것처럼 둔탁합니다.
생각이 깊숙한 곳까지 가지 못하고 계속 둥둥 떠 있는 기분입니다.
발을 바닥에 붙이고 한 점을 깊게 응시하고 싶은데, 산만하게 초점이 계속 흔들립니다.
체조를 하세요.
네?
체조를 하십시오. 청소도 하시고요.
나는 몹시 당황했다. 내 표정을 읽고 스님은 차분히 말씀을 이어나갔다.
사람이 행복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의 우리는 한 가지밖에 배우지 않아요.
꿈을 이루는 것은 물론 아주 멋진 일이지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스스로를 돌볼 줄 알아야 해요. 체조와 청소 같은 것은 단순한 행동으로 삶을 정돈하고 또 조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에너지를 동반해야만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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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어졌지만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북카페가 있었다.한쪽 벽면은 나무 책장으로 짜여 있고 바닥과 테이블 모두 나무로 인테리어 한 엔틱 한 북카페였다. 음료를 주문하면 2시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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