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권 에세이)살리는 일_박소영 지음|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살리는 일' 책 제목만 놓고 보면 한 생명이 눈앞에서 위태롭고 그 생명을 살리기 위해 가슴을 졸이는 장면이 상상된다.
어떤 작가가 어떤 내용을 적었길래 '살리는 일'이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제목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이 책의 표지에는 '동물권 에세이'라고 적혀있다.
동물을 살리는 내용인가.
한 페이지를 넘겨 작가 소개란을 읽어본다.
박소영 작가
10년 차 기자이자 5년 차 캣맘이다.
2016년 첫 고양이 토라를 만났고, 이후 길에서 만난 석수·쇼코·모리·수리를 차례로 식구로 들였다.
동생과 함께 10여 군데의 길고양이 급식소를 운영한다.
모든 동물이 안전하고 자유롭기를 바라며, 곧 그런 날이 올 거라 믿고 있다.
아, 작가님이 캣맘이시구나.
동물권, 캣맘, 길고양이, 구조, 자유 등의 단어가 일상에 들어와 있지 않는 내게 이 책은 파란을 일으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살리는 일' 5p 여는 글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밥을 먹이고, 고통으로부터 보호하고, 마음의 상처를 보듬는 일. 새 힘을 주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일. 작은 힘이나마 누군가를 위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살리는 삶'을 살고 싶다.
작가님의 표현대로 사랑을 하는 것이 요즘 세상에는 참 힘든 일인 것 같다.
사랑하는 일이 희생이라 생각하기도 하고, 계산적인 속내로는 손해라고도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는 희생, 손해에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다.
출간을 앞두고 고민이 깊었다. 결코 즐겁지 않은 이 이야기가 읽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글 여기저기 배어 있는 슬픔과 분노에 독자가 지치지 않을까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살리는 일'을 주제로 책을 쓰기로 한 이상, 읽는 이의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 내 고민을 숨길 수는 없었다.
부디 괴로운 독서가 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는 글 6p-
작가님의 바람과 달리 나에게 조금 '괴로운 독서'가 됐다.
오디오 북으로 1번, 책으로 1번, 다시 1번, 또다시 1번.
몇 차례 읽으면서 처음 들었던 생각이 부끄러움으로 바뀌었고, 부끄러움에 다음엔 고민으로 바뀌었고, 고민이 이제 일상에서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살리는 일을 주제로 책을 쓰기로 한 이상, 읽는 이의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 내 고민을 숨길 수는 없었다'는 말이 이제는 너무 와닿아 "그래. 박정민을 탓하자"라는 이상한 결말에 도달했다. (왜냐하면 이 책을 읽게 된 계기가 박정민의 책을 읽고 그의 출판사 '무제'에서 출간한 책에 관심이 생겨서이다.)
책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있다거나 줄과 칸이 빽빽해 보기 힘들다거나 하지 않다.
오히려 일상의 에피소드를 엮은 내용이라 읽기 쉬운 편이 속한다.
하지만 읽기 힘들다고 한 건 책 안에 담긴 사람과 동물이 전해주는 감정의 밀도가 높아서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유독 '여기 캣맘이 있다'를 잘 넘기질 못했다. 읽고 또 읽고 다시 돌아가 읽고.
읽고 처음에 든 감정은 민망하게도 '불편함'이었다.
그래도 내 생활이라는 것이 있는데 개인의 일상이 너무 고양이들에게 치우쳐 있는 거 아닌가?
길을 가다 아프거나 마른 고양이를 마주치면 그냥 지나 칠 수 없는(한 달 또는 일 년간 고양이 밥셔틀을 했다니..) 그녀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비인간 동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여름철엔 더위를, 겨울철엔 추위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라며 슬퍼하는 그녀를 보며 원래 동물들은 바깥 생활을 하지 않나? 하는 의아함 마저 들었다.
그녀가 이토록 분노하고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길고양이를 돌보는 이유가 뭘까?
단지 고양이가 그녀에게 특별한 존재라서?
인간과 고양이가 같을 수 있나? (생명의 경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감각과 동물의 감각은 다를 것이고, 사람의 사고를 동물이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저런 의문과 납득할 수 없는 것들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고 불편했다.
하지만 '나는 동물권 옹호자입니다.'를 읽을 때는 부끄러움에 몸서리를 쳤다.
집에 돌아온 나는 '무섭다'는 감정이 도대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곤충의 생김새가 무서웠던 걸까? '무서운 생김새'라는 것이 따로 있나? 그렇다면 무서움을 충족시키는 요건은?
(중략)
생각을 거듭할수록 무섭다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낯선 생물체에 느끼는 혐오감임이 분명해졌다.
그렇게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개나 고양이를, 누군가는 새를 '무서워하겠지' 생각하니 아득해졌다.
-빨간 애 중-
내가 느낀 불편함의 실체가 외면과 차별, 혐오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멀쩡한 가면을 쓰고 의식 없이 돌팔매질을 하고 있었구나.
혼란스럽고 머릿속이 잘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채식을 한다고 밝힌 이후, 단지 그 이유로 나를 비난하고 심지어 조롱하는 이들도 있었다.
페스코 베지테리언(해산물까지 먹는 채식인)으로 채식을 시작한 내게 "채식 중에서도 아주 낮은 단계"라며 비아냥대는 이가 있는가 하면, "식물은 생명이 아니냐"는 그 유명한 레퍼토리를 실제로 구사하는 사람도 있었다.
(중략)
단지 고기를 먹지 않기로 한 것뿐인데 이상하게 자주 외로웠다.
사람들은 나의 변화를, 변화하지 않는 자신을 향한 비난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더욱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지금의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 더는 기여하지 않겠다는 나의 고백은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태도였다.
그러나 실천이 어렵다는 이유로 앎조차 없던 것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
알았다면 행동으로 옮겨야 했다. 아니, 적어도 행동으로 옮긴 사람을 비난하지는 말아야 했다.
-채식을 하며 알게 된 것 1 중-
이제 짜증이 난다.
아, 진짜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왜 저러는 거야...
내가 아무리 상식적으로, 이성적으로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고 떠들어 봤자이다.
그래봤자 입 안에 맴도는 말, 말, 말뿐이다.
지금도 아직 말뿐인, 생각뿐인 내가 불편하다.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도 이 책을 다 읽지 못했다.
내 책상에 꽂혀있고, 잊을 때쯤 손이 다시 가 읽고 또 괴로워한다.
큰일이다. 이 책이랑 같이 박소영 작가님의 다른 책 '자매 일기'도 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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