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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소설집_김연수(수면 위로)외 4인|나에게 새로움을 주는 오므라이스의 신맛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grayish 2025. 6. 6.

음악소설집은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음악을 '소재'로 한 다섯 작가들의 단편집이다.

김애란, 김연수, 윤성희, 은희경, 편혜영 님의 글이 담겨있고, 모두 쟁쟁한 작가님들이라 모든 작품들이 좋았다.

  1. 안녕이라 그랬어_김애란
  2. 수면 위로_김연수
  3. 자장가_윤성희
  4. 웨더링_은희경
  5. 초록 스웨터_편혜영

하지만 내가 그중 으뜸으로 꼽은 것은 김연수 작가님의 수면 위로였다. 

'수면 위로' 

책 뒤편에는 편집자와 다섯 작가들의 인터뷰가 담겨있는데 거기서 제목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물속에서 수면 위로 올라가는 것과 잠+위로 

그런 의미가 있었다니. 내게 강렬히 남은 것은 오므라이스였는데 다시 책을 뒤적여봤다.

 

야외테라스-테이블위-책

 

"태어날 때부터 물고기는 물속에 있었다.

한 번도 물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물고기는 자신이 자유가 뭔지를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때문에 물고기는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물고기는 수면 위에 뭔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고기는 그 뭔가의 이름을 부를 수가 없다. 그저 물의 바깥이라거나 물이 아닌 것이라고 부를 뿐이다.

아는 것이라고는 물 뿐이라 그런 이름밖에는 붙일 수 없다.

그래서 거기 분명 뭔가가 있는데도 물고기는 수면까지 가서는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물의 바깥, 물이 아닌 것은 물고기에게 없는 것이니까.

 

하지만 물의 바깥에서 물고기를 지켜보고 있는 우리는 그 이름이 하늘이라는 것을 안다.

물고기에게 없는 것이 우리에게는 있다. 그렇게 우리는 몰 속의 물고기를 들여다보고 있다.

또 다른 뭔가는 그런 우리를 들여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평생 자기의 생각 안에서만 헤엄치다가 그 생각 안에서 죽을 우리를, 그리고 그 생각 안에서 다시 태어날 우리를."

 

-음악소설집 83~84p

 

 

 '수면 위로' 줄거리

음악소설집-책-표지

 

기진이 죽은 지 얼마 안 되었다. 기진을 생각하면 숨이 턱 막혀 잘 쉬어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유튜브에 '호흡하는 방법'을 찾아보다 우연히 유쥬라는 유튜버가 무일푼으로 전국을 여행하는 영상을 보게 된다. 

그의 영상을 몇 개 보다 어느 한 영상에서 은희의 시선이 멈춘다. 

유쥬가 영천을 여행하면서 어느 한 중국집에 들어간 영상인데 유쥬는 맛있다고 소문난 오므라이스를 주문하고 혼자 앉아있었다.

잠시 후 낯선 남자가 말을 걸어온다. "우리 얘기 좀 할래요?" 

그는 기진이었다. 

유쥬의 얼굴에는 경계하는 모습이 나타나지만 곧 기진이 자신을 시간여행자라고 밝히며 과거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잘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번 해보도록 하죠. 며칠 전, 잠에서 깬 뒤로 갑자기 기시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처음 보는 길인데 언젠가 와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누군가를 만나자마자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았습니다.

전에도 이런 적이 몇 번 있었죠. 그때마다 저는 이 중국집으로 달려왔지요.

이 기시감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아니까요.

그러다가 그쪽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어쩌면 나를 도와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기진의 과거&기진의 엄마 이야기 

기진의 엄마는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기진을 임신하면서 원치 않는 결혼과 출산을 하게 된다.

여자는 자신을 불행하게 한 남편의 사업이 망하길 바랐고 그의 사업이 망하면서 여자와 기진은 남자의 고향인 영천으로 내려가게 된다.

영천으로 내려온 뒤 여자는 어떤 꿈을 반복적으로 꾸게 되고 전에 하지 않던 이상한 말들을 하기 시작한다.

곧 동네 사람들도 여자를 이상하게 보고 수군거리자, 남자는 여자에게 입도 벙긋하지 말라며 혼을 낸다. 입이 근질근질거려도 참으라 하면서. 이후 여자는 말을 하지 않게 된다.  

 

"그해 여름, 엄마는 거의 말이 없었지만 말하더라도 지긋지긋해 죽겠다는 말만 하고 살았지.

마치 그 여름을 수 백번은 살아본 사람처럼.

아마도 엄마는 그 여름에 갇힌 기분이 아니었을까?

사방이 꽉 막힌 현실 속에서 어디로 도망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던 게 아니었을까?" 

(수면까지 가서는 다시 물속으로 되돌아가는 물고기처럼?)

 

그 여름, 여자는 기진에게 드뷔시의「달빛」을 가르치겠다며 기진을 데리고 피아노 학원을 간다.

그리고 원장에게 첫눈이 내리기 전까지 기진이 드뷔시의「달빛」을 칠 수 있게 해 줄 수 있냐고 묻는다.

원장은 그렇게는 못 가르친다고. 기초부터 차근차근 올라가야지 다짜고짜 드뷔시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그러다 원장을 통해 중국집 할머니가 사람들의 운명을 잘 맞힌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여자의 관심은 이제 피아노에서 중국집 할머니에게로 돌아서고 기진과 학원을 나온다. 

 

중국집에 들어선 여자는 난생 그런 곳은 처음 본다는 듯 가만히 서서 실내를 둘러본다. 

뭐가 그렇게 여자를 놀라게 했을까? 

여자와 기진은 한쪽에 자리를 잡았고, 여자는 주문을 받으러 온 할머니에게 대뜸 묻는다.

 

"사람들의 운명을 그렇게 잘 맞힌다면서요? 제 운명도 한번 봐주세요."

여자는 자기가 죽는 꿈을 꾸었다고 말한다.

여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할머니는 단언했다.

"그건 엄청나게 좋은 꿈이야. 마음을 품은 생각은 모두 이뤄지는 길몽이지. 죽는 것만 못 하고 원하는 건 다 할 수 있어" 

"더 궁금한 게 있으면 저기 강가에 있는 성당으로 와. 거기 다니니까."

 

그날 중국집을 다녀온 뒤로 그녀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강가에 있는 성당의 예비 신자 교리반에 나갔고, 거기서 만난 사람의 소개로 역 소화물 코너에 일자리를 구했다. 

그녀는 이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므라이스는 맛있고 맛없지 않습니다. 오므라이스는 맛있지 않고 맛없습니다. 

오므라이스는 맛있고 맛없습니다. 오므라이스는 맛있지도 멋없지도 않습니다."

"지금은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 알게 되겠죠. 맛있는지 맛없는지" 

 

 

김연수 작가 인터뷰 

음악소설집-김연수-작가-인터뷰집

Q. 인물의 이름에 대한 것이든 제목에 대한 것이든 다른 사람들은 잘 눈치채지 못하는, 소설에 숨겨놓은 비밀스러운 요소가 있을까요?

A. 이 소설은 제목부터 떠올린 뒤 쓰기 시작했습니다.
'수면'과 '위로'라는 단어를 결합하니 중의적인 표현이 되는 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속에서 수면 위로 올라가는 것과, 잠+위로, 이 두 가지 의미로 함께 들리기를 원했습니다.

비밀까지는 아니지만, 또 이런 것도 있습니다. 저는 부처의 생애를 담은 책이라면 뭐든지 읽습니다.
그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깨달음을 얻은 직후에 부처가 입을 다물고 조용히 사라지려는 부분입니다.
부처는 인간들이 자신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때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저는 인류에 대한 이 깊은 비관주의에서 부처의 힘이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결국 부처는 입을 여는데, 이 '그럼에도 결국'이라고 하는 부분을 저는 아주 좋아합니다.

 

 

느낀 점

음악소설집-책-표지

 

소설 속 기진과 기진의 엄마는 자신을 시간여행자라 말했다. 어느 한 시점을 반복해서 살고 있다는 시간여행자.

책 초반엔 그들이 정말 시간여행자일까?라는 궁금증이 일었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매번 같은 하루 속에 삶의 의미도 이유도 찾지 못한 채 시들어 가는 그들이 진짜 시간여행자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매일 반복되는 이 하루에도 어떤 새로움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 그 하루를 살아보지 않고는 오므라이스가 맛있을지 맛없을지 알 수 없다는 희망을 남긴 것이 꽤 좋았다.

 

사실 기진의 엄마와 오버랩되어 과거 내가 원하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되었을 때 옴싹 달싹도 할 수 없는 환경 속에 처한 내 모습이 생각났었다.

그때 내게 가장 공포스러웠던 건 더 이상 그려지지 않는 미래였다.

나는 이 상황이 계속 지속될 것이고 벗어날 수 없을 거다.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시기를 지나온 지금, 뒤돌아 생각해 보면 긴 터널을 걷는 것 같은 그 시간도 끝은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그 시기를 어떻게 지나올지가 문제인데 답은 '수면 위로' 속 인물들이 알려주고 있다. 

기진이 유쥬에게 말을 건 것처럼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는 것. (인생이 궁지에 몰렸을 때는 도와줄 귀인이 필요하다는 작가님의 말)

은희가 공책에 사실에 맞선 진실을 기록하는 것처럼 사실의 세계에 저마다의 자막을 달아보는 것.  

유쥬의 '나무 바라보기'처럼 자연을 느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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