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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2025년)_성혜령外 6인|원경 후기

grayish 2025. 6. 16.

이번에 문학동네 북클럽을 가입하면서 4권의 책을 받았다. 

  1. 2025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지정도서)
  2. 2025 자선 시집 다른 계절을 찾아 여행을 떠나려고요.(지정도서)
  3. 이중 하나는 거짓말(선택도서)
  4. 하얼빈(선택도서)

 

'북클럽'은 년간 회원권 같은 의미로
출판사에서 지정한 책 몇 권과 내가 지정한 책 몇 권을
굿즈와 함께 받아볼 수 있는
가성비 좋은 랜덤박스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4권의-책-책등

 

5만 원에 책 4권과 굿즈까지 받아 볼 수 있다니 혹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북클럽에 가입하고 2달이 지난 지금, 다행히 책은 다 읽었고 굿즈도 너무 잘 쓰고 있다.

그리고 이 중 가장 좋았던 책을 꼽으라 하면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다.

 

북클럽 지정도서라 사실 큰 기대가 없었는데 수록된 단편 모두 재밌었고, 새롭고, 심오해서 마치 다른 세계의 문을 열어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나를 이 문으로 이끈 건 소설 뒤에 적힌 평론가의 해설이었다.

 

만약 내가 이 책을 소설 부분만 읽었다면 내 위주로 공감한 문장, 감상만 기억에 남았을 것 같다.

그런데 평론가의 해설은 마치 잘 조립된 책을 해체해서 다시 조립할 땐 이렇게 해보세요. 하듯이 작가의 의도, 스토리의 구성, 내재된 장치와 의미 등을 잘 설명해 주어 나도 모르게 책 속에 다른 문을 열어 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 말고 더 속 깊은 얘기를 듣게 된 사람처럼 작가와 이 책과 나를 더 끈끈한 사이로 만들어 주었다.

'아 이렇게 책에 더 깊게 들어갈 수 있구나.' 

이런 내적 친밀감을 책에서도 느낄 수 있다니 신기한 경험이었다. 

 

 

원경(성혜령) 줄거리

젊은작가상수상작품집-책-표지
16회젊은작가상수상작품집에-수록된-작가목록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현실적으로 너무 와닿았던 작품이 성혜령작가님의 '원경'이다.

 

📖원경 줄거리

원경의 이야기는 '신오'가 병원에서 암선고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의사는 암이 다른 곳으로도 이미 전이됐으니 하루빨리 입원해 수술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신오는 2주 뒤에 있을 프로젝트를 걱정하며 의사에게 입원을 2주 뒤로 미룰 수 있는지 묻는다.

'내가 암이라니.' 평소 건강 관리를 잘했다 여겼던 신오는 믿기지가 않았다. 

그런데 불현듯 자신의 불행이 언제서부터 시작됐는지가 떠올랐다.

'원경과 헤어졌을 때부터 뭔가가 잘못됐다.' 

원경은 신오와 4년을 사귀고 헤어진 옛 연인이었다. 

원경을 떠올리면 물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채워진 컵이 생각났다.
처음 만난 식당에서 원경이 컵에 물을 따라줬을 때 신오는 속으로 작게 감탄했다. 어떻게 물을 저렇게 깔끔하고 적당하게 따를 수 있지. 
원경은 그 물컵처럼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사람이었다. 신오는 원경처럼 적당한 사람을 만나본 적 없었다.

신오는 자신이 매우 평균적이고 상식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과 잘 맞는 사람을 찾기가 그토록 어렵다는 것에 매번 놀랐다.
원경은 달랐다.
원경의 상식 수준과 감수성의 정도는 신오의 신경에 거슬린 적이 없었다.
이런 사람이라면 함께 살아도 좋겠다고 신오는 생각했다. 

 

신오는 '그런 원경'과 왜 헤어진 걸까?

이유는 어머니 쪽 집안 내력으로 유방암이 있다는 얘기를 원경으로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신오는 어쩔 수 없이 상상했다.
결혼 후 원경이 암에 걸린다. 가슴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는다. 신오는 모든 일을 제치고 병원에 있어야 할 것이다. 
항암치료로 원경이 수척해진다. 신오는 원경을 돌보기 위해 요리도 배울 것이다.
몇 년간은 정기 검사를 함께 다니며 괜찮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안도한다.
그러다 다시, 이 모든 일이 반복된다면?

정말 기꺼운 마음으로 원경을 돌볼 수 있을까? 
이런 상상을 해버린 이상 원경과 관계를 계속 이어갈 수는 없었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들과 그 사람이 가지고 올 불확실한 미래까지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라면, 신오는 지금까지 누구도 사랑해 본 적이 없었다."

 

이제는 반대의 입장이 된 신오는 그때 원경과 결혼했으면 어땠을까, 원경이라면 아픈 자신을 돌봐줬을 텐데.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원경에게 다시 연락을 해본다. 

그리고 원경이 일을 그만두고 운주 이모님 산에 있다는 답장을 받고 그곳으로 바로 출발한다.

 


 

이모님 집 앞에 도착했지만 눈앞에 보이는 건 없어진 집터와 새까맣게 타버린 나무들이다. 

곧이어 원경이 도착하고 원경과 함께 온 사람들이 있다. 원경의 이모님과 근처 절에 보살님이다.

이 세 사람은 신오의 발길을 재촉하며 어서 산에 오르자고 한다. 신오는 영문도 모른 채 이들을 따라 산에 오른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어느 암자다. 암자는 완전히 타서 기둥 몇 개와 터만 남았는데 그 주변으로 군데군데 파인 구덩이가 보인다.

세 사람은 익숙한 듯 목장갑을 끼고 삽을 들어 땅을 파기 시작한다. 

사연인즉 산불이 나서 이모님 집과 인근 절이 다 탔고 세 사람은 혹시 남은 불씨가 없는지 확인하고 있던 것이었다.

 

구덩이를 파며 신오는 원경에게 '사실 자신이 좀 아팠다고. 암 말기였는데 지금은 완치가 됐다고. 그때 너에게 갑작스럽게 이별 통보를 하고 연락을 끊어 미안했었다고. 제대로 만나 사과하고 싶었다고.' 거짓말 섞인 말을 한다.

이를 들은 원경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뭘 이런 것 가지고 사과하냐며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때 네가 헤어지자고 안 했으면 내가 얘기했을 거야.
내가 맨날 너네 집에 갔잖아. 그러다 집에 돌아오면 왜 항상 나만 너네 집에 가야 하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너 네가 보고 싶어 하던 영화 보면 그 영화 얘기만 계속하고 내가 보고 싶어 하던 영화 보면 끝나고 맨날 딴 얘기만 했던 거 알아?

그런 것들이 점점 거슬렸어. 
문자 하나 남기고 갑자기 연락이 안 되니까 처음에는 황당하긴 했는데, 나중에는 그냥 뭐, 이렇게 끝내도 되겠다 싶더라.
같이 있으면 편했지만 떨어져 있다고 불편하진 않았으니까.

 

원경이 고개 숙인 신오를 힐끗 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때 네가 아픈 걸 알았다면 네 옆에 있었을 거야. 나는 아픈 게 어떤지 아니까.
아픈 사람에게는 사랑이 아니라 인내가 필요하니까. 기억날지 모르겠는데, 우리 엄마도 큰 이모도 유방암으로 돌아가셨잖아.

근데 나한테는 그 돌연변이 유전자가 없대.
회사 건강검진 항목에 암 유전자 검사가 있길래 받아봤더니 그렇다더라. 

 

신오가 걱정했던 상상은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고 되려 자신이 그 입장이 되었다.

심지어 원경이 자신만큼 이 관계에 만족감이 없었고 헤어짐 조차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것을 보며 신오는 자신이 뭘 놓쳤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끝도 없는 혼란에 빠진다.

 

 

원경 독서 후기 

젊은작가상수상작품집-1회부터-15회까지-목록

 

신오가 사람이 참 별로다.라는 생각이 들지만 마냥 미워할 수 없는 건 신오의 모습에서 일부 나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신오가 가진 불안은 나의 불안과 맞닿아 있었다.

 

불안은 바닷속 깊은 곳에 몸을 웅크리고 있어 나는 그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내가 볼 수 있는 건 수면 위로 드러난 그와 연결된 자기 통제뿐이었다. 

 

통제는 불행하고 싶지 않아서 내 주변으로 쳐 놓은 결계였는데 결과적으로 그것이 나를 옭아맸다.

통제는 또 다른 불안을 만들고 불안은 나를 통제하게 했다. 

이것은 악순환.

 

내가 이 소설에 감사한 것은 이 악순환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악순환의 시작점인 불안을 드디어 찾아낸 것이다.

몸통을 찾았으니 그와 연결된 끈을 자르면 될 것이다. 

가위는 나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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