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_문미순 장편소설|그대들의 삶을 살아가시길.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한 번쯤 시린 겨울을 지나왔던가.
나는 계절의 그것보다 긴 겨울을 지나왔고 어쩌면 지금도 겨울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종종 해본다.
나에게 겨울을 보내는 느낌은 상투적이지만 홀로 어두운 긴 터널을 걷고 있는 것 같다.
이 길을 걸으며 긴 터널 끝에 세상이 보이길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기다리는 시간은 꽤 지루해서 내가 어떤 모양으로 걷고 있는지, 터널 안은 어떻게 생겼는지, 눈을 가늘게 뜨고 터널 끝에는 뭐가 있을지 고민하고 상상해 본다.
그러다 이 터널이 내 세상은 아니었는지.
터널 끝에 내가 바란 세상은 어쩌면 신기루가 아니었는지.
스스로가 만든 철창을 가늘게 휘었다 굵게 늘렸다 해본다.
나는 아직 어떻게 해야 이 겨울을 지날 수 있는지, 겨울을 지난 다는 게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이 소설을 만났을 때 어쩌면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책 표지에 그리 의미를 두지 않는데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의 표지는 불멍 하듯 멍하니 계속 보게 된다.
하얗게 소복이 내린 눈도 마음에 들고 노을 진 하늘에 어둠을 빛내는 별들이 겨울인데도 따뜻한 느낌을 준다.
이 책을 읽을 당시 계절적으로 겨울이었고 나는 집에서 뒷산을 넘어 매일 같이 도서관을 가곤 했다.
그 시간이 하루 중 가장 기분이 좋았다.
좋은 기분은 그날의 공기와 냄새를 각인시켰고 이 책을 추억하게 한다.
<책의 줄거리>
임대아파트 701호에 사는 명주 아줌마와 701호 청년 준성이 등장한다.
명주는 치매를 앓고 있고 거동이 불편한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명주는 그날 밤 자정이 지나서야 들어왔다. 매서운 한파와 취기로 잔뜩 언 몸을 녹이려 서둘러 집으러 들어온 명주는 작은 방으로 가는 중간 바닥에 쓰러진 엄마를 발견한다.
그날 밤 향년 76세 명주의 엄마가 돌아가셨다.
명주는 엄마의 사망신고를 하지 않는다.
죽은 엄마의 몸을 멸균 거즈로 닦아내고 편백나무 수액으로 다시 한번 몸을 닦아낸다.
그리고 아마포 붕대로 머리와 얼굴, 목, 귀 뒤까지 세심하게 싸기 시작한다.
수차례 감싼 엄마의 시신을 나무 관에 넣어 작은 방에 둔다.
명주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잔액을 확인했다. 지난달과 같은 액수였다.
기초연금 307,500원과 유족연금 698,000원을 합친 1,005,500원이었다.
뛰는 가슴을 좀처럼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발걸음이 저절로 앞을 향해 내달았다.
담벼락에 아무렇게나 버려놓은 부서진 유모차와 서랍장도 이 세상을 이루는 아름다운 풍경처럼 느껴졌다.
...
..
.
명주의 옆집에 살고 있는 준성은 올해로 26살이다.
준성에게는 알콜성 치매기가 있고 뇌졸증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가 있다.
준성은 낮에는 아버지의 병간호를 하고 저녁에는 대리운전을 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해 가고 있다.
"그 술병 내놓으라니까요. 저 죽는 꼴 보려고 그러세요? 제발 그 술병 내놓으라니까요!"
준성은 그제야 아버지 기력이 떨어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버지가 자신 몰래 술을 사다 마신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는 것도. 순진하게도 아버지가 술을 끊었다고 믿었다니. 준성의 두 볼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아질 거라고, 언제 가는 좋아질 거라고 믿고 있었다니. 준성은 이제껏 굳게 믿고 있던 신념들이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후기>...
이 책의 결말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명주는 작은 방에 엄마의 시신을 두고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시도 때도 없어 엄마의 안부를 묻는 진천 할아버지, 집요하게 돈을 요구하는 명주의 딸 은진, 부패가 진행되고 있어 시신에서 새어 나오는 냄새.
극 초반에 명주가 엄마의 연금을 계속 받기 위해 장례를 치르지 않고 옆방에 엄마의 시신을 두고 생활한다는 것이 많이 불편했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명주의 사연과 명주가 당면한 현실이 너무 냉혹해 차마 명주를 비난할 수 없었다.
아픈 가족을 돌보는 보호자의 삶은 어떨까. 짐작이 가지 않는다. 그리고 은연중에 그들에게 가족의 의무를 요구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불행도 같이 겪는 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명주와 준성은 불행의 늪에서 서로를 건져 올렸다. 우리도 행복해도 되는 존재라고.
서로 맞잡은 두 손으로 새로운 가족이 되었고 그들의 삶을 살았으리라.
셰이커_이희영 장편소설 <윌라 오디오북 추천> 나의 미래는 과거의 현재이기도 하다. 오늘을 잘
2025년 새해가 시작되면서 다짐한 것이 있다. '올해에는 책을 많이 읽어야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다독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오디오북과 전자책이 떠올랐다. 오디오 북은 귀로 듣는 책이고
develop.writer-ju.com
온전히 몰입하는 시간_김영아 <필사 책 추천>
나는 내 글씨체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성인이 된 이후로 본 내 글씨체는 '애들 글씨체'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좀 더 어른스러운 글씨체를 가지고 싶었는데' 하는
develop.writer-ju.com
파씨의 입문_황정은 소설집|지독한 외로움과 죽음 그리고 지옥 같은 삶에서 나는 어떤 걸 느꼈
파씨의 입문은 내가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 독립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아니 우연히 찾은 책이라고 할 수 없겠다.파씨의 입문은 눈에 잘 보이지 않은 무릎 아래쪽 칸에 있는 책이었다.
develop.writer-ju.com
'Reading Books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나_이희영 장편소설|나는 나에게 좋은 사람일까? (3) | 2025.02.25 |
---|---|
백의 그림자_황정은 장편소설|나는 당신의 마음이 불편하길 바랍니다. (0) | 2025.02.19 |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_윤정은 장편소설|후회하는 일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당신은 행복해질까? (1) | 2025.02.16 |
히든 픽처스_제이슨 르쿨락 지음|식스센스 같은 반전에 반전이 있는 결말 (0) | 2025.01.08 |
셰이커_이희영 장편소설 <윌라 오디오북 추천> 나의 미래는 과거의 현재이기도 하다. 오늘을 잘 살아야겠다 다짐해 보는 책 (1) | 2025.01.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