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언어들_김이나 지음|나의 언어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싱어게인'이라는 무명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에 김이나 작가님이 심사위원으로 출연해 각 출연자마다 심사평을 애기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작가님이라서 그런가 말씀을 참 잘하시네'라는 정도의 생각만 하다, 어느새 출연자의 노래보다 김이나 작가님의 심사평이 더 기다려졌다.
이때의 나는 '말을 어쩜 저렇게 이쁘게 할까' '어떻게 저런 표현이 나올 수 있지'라는 무한 감탄과 '나도 내 마음을 저렇게 잘 표현하면 좋겠다' '내 마음을 좀 더 잘 표현하면 날 오해하지 않지 않을까'라는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김이나 작가님의 책을 찾아보게 됐고, '보통의 언어들'이란 책을 발견했다.
'보통의 언어들'이라.. 왠지 책 제목만 보면 작가님 만의 말 표현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막연한 기대감과 약간 들뜬 마음이 든다.
나는 책을 선택할 때 표지 문구와 뒷면에 짧은 감상평을 보고 읽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편이다.
'보통의 언어들'도 마찬가지였다.
"지쳤다고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말 것" 작사가 김이나, 각자만의 외롭고 긴 시간을 견디게 하는 언어의 마법
김이나 작가님의 말의 표현력을 배우고 싶어 골랐던 책인데, '지쳤다고 말해도 돼' '외롭고 힘들었지'라고 위로하는 듯한 말에 책을 읽어보아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나에게 필요했던 건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거 아니었을까?
자, 그럼 책을 한번 펼쳐보자.
귀여운 고양이 일러스트가 있고, 반투명 종이는 손으로 살짝 누르면 뒷면에 보통의 언어들이 보인다.
여기에 미소를 한번 짓고 간다.
책 표지가 연한 초록색인 것도, 책 끈이 형광 연두색인 것도, 삽지의 분위기가 싱그럽고 푸르른 것도 미소진 내 얼굴처럼 내 마음을 즐겁게 해 준다.
책은 총 3파트로 되어있고, 파트마다 '보통의 언어' 들이 있다.
소설처럼 앞부터 쭉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라서 내 마음에 끌리는 '언어'를 골라 읽어본다.
제일 마지막 파트인 Part 03 자존감의 언어에 시선이 머문다.
자존감. 알 듯하면서도 사실 잘 모르는 말이다.
몇 해 전만 해도 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당시 나는 어떤 일이든 다 잘해 낼 수 있고 시련과 고난에 강한 사람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존감이라기보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딱 맞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어떤 일에도 자신이 없고, 주변의 사소한 말에 쉽게 흔들리고 상처받는다.
그간의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자존감이라는 게 처해진 상황과 입장에 따라 높아지고도 하고 낮아지기도 하는 그런 것인가? 변하지 않는 고유 성질 같은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자존감은 근육 같은 거예요.
한번 높아지면 계속 높아져 있는 게 아니죠.
그냥 높아질 때도 있고 낮아질 때도 있고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근육처럼 키워야 해요.
가끔 약해졌을 때는 또 쉬었다가, 다시 운동해서 키우고, 그렇게 반복하는 거죠."
글을 읽는 순간 '아! 자존감을 체력처럼 생각하면 되겠는데?'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사실 나는 체력이 약한 편이라 주변에서 왜 이렇게 골골대냐는 소리를 자주 듣는 편이다.
그럴 때마다 '누가 아프고 싶어서 아프나..' '나도 아프고 싶지 않다고' 하고 속으로 꿍얼거리는데
결론은 아프면 나만 손해라는 것이다.
그리고 30대가 되면서부터는 컨디션이 좋은 날보다 안 좋은 날이 더 많아졌다.
이제는 주변의 듣기 싫은 소리 때문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의 질을 높이고 싶어서 운동을 하고 스트레칭을 하면서 체력관리를 한다.
'내 자존감아 너의 존재를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해 미안해'
'앞으로는 네가 아프지 않게 잘 보살피고 힘을 길러보도록 노력할게'
'우리 잘해보자. 잘 부탁해'
다음은 내가 이 책에서 감명 깊게 읽은 부분을 발췌해 봤다.
🔖호흡 (149p)
참 아이러니하다. 오직 현재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 우리인데 정작 생각은 주로 미래나 과거에 갇혀 있으니 말이다.
겪어온 것들(과거)로 인해 생긴 두려움으로 피어오르는 다가올 일(미래)에 대한 걱정.
티베트 승려들처럼 명상의 고수가 아닌 이상, 보통의 사람이라면 떠오르는 생각들을 막을 순 없다.
그럴 땐 가만히 숨을 쉬며 그 생각들을 바라보라고 한다.
신기한 것은 '걱정을 하고 있는 나'를 인지하는 것만으로 실제로 스트레스가 반은 넘게 사라진다는 거였다.
현재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 것, 어쩌면 명상은 그걸 위해 하는 걸지도 모른다.
🔖정체성(162p)
우리는 각자 고유한 '나'임에 틀림없지만, 세포분열을 하듯 수많은 상황 속에 각기 다른 '역할'로도 존재한다.
이 역할은 꼭 의무감만이 아닌 무의식으로도 생겨나는데,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나면 그때의 모습으로, 직장 동료 모임에선 그 무리에 맞는 모습으로 있게 되는 상황이 이를 증명한다.
심지어 꼭 집단에서뿐만 아니라 누구의 앞이냐에 따라 우리는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타인에게 온전히 이해받기 힘들다.
이 모습들을 스스로 인지하지 않으면, 문득 억울하고 외로운 밤이 찾아온다.
'왜 내 맘을 아무도 모르지? 왜 나는 강한 사람인 줄로만 알지?' 그건 누구 탓도 아닌, 우리의 '사회성' 때문인데 말이다.
정세운의 말을 잘못 이해하면 진정성이 없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그렇다면 큰 오산이다.
모두에게, 모든 곳에서 온전한 나로서만 존재한다는 건 아주 이기적이어야 가능하다.
배려하기에, 사랑하기에, 책임이 있기에, 히스토리가 있기에 우리는 종종 다른 모습을 한다.
🔖나무늘보의 생존법(211p)
세상에서 가장 느린 동물로 알려진 나무늘보는 하루에 18시간 동안 나무 위에서 잠을 잡니다.
움직임도 느리고 근육 양이 탁월하게 적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이동하는 일이 없죠.
이렇게 게으른 나무늘보가 야생에서 살아남은 비결은 뭘까요? 비결은 단순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배변할 때 빼고는 절대로 나무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 것.
즉 누구에게도 관심받지 않는게 나무늘보의 생존 전략인 셈인 거죠.
옆의 사람의 속도에 맞춰 빠르게 살지 않아도 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죠.
혼자 고립되면 고립될수록 그것이 생존 무리가 되는 나무늘보의 세계..., 가끔은 세상에서 가장 느린 나무늘보처럼 느리게, 느리게 살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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